제주여정
제주여정
주상절리/산방산/용머리해안/비자림/우도/삼성혈
제주도.......................위키백과 발췌...........
<지형>
제주특별자치도청이 소재한 섬이며, 대한민국 면적의 1.9%에 해당되는 제주특별자치도에서 가장 큰 섬이자 한국에서 가장 큰 섬이다.
황해와 동해, 동중국해의 경계에 자리잡아 대한민국·중화인민공화국·일본 3개 국의 교통상의 요지는 물론
정치·경제·군사상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중앙의 한라산을 중심으로 완만한 경사를 이루어 동서 73km, 남북 41km의 타원형을 하고 있다.
일주도로 길이는 181km, 해안선은 258km이다.
북쪽 끝: 김녕해수욕장
남쪽 끝: 송악산
서쪽 끝: 수월봉
동쪽 끝: 성산 일출봉
제주도는 온대 기후에 속하며, 겨울에도 거의 영하로 떨어지지 않고 영상을 유지한다.
한라산, 성산 일출봉, 거문오름 용암동굴계가 학술·문화·관광·생태 등의 가치와 중요성을 인정받아
2007년 6월, 제주 화산섬과 용암 동굴이라는 이름으로 세계자연유산에 등록되었다.
제3기의 서귀포층과 제4기에 속하는 성산층·화순층 등의 퇴적암층과 현무암·조면질안산암·조면암 등의 화산암류,
본도에서의 화산활동은 크게 5회의 분출윤회로 구분되며 총 79회 이상에 달하는 용암분출이 관찰되고 있다.
특히 제주 전 면적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현무암류는 온 섬을 덮어 3다의 하나인 ‘석다(石多)’ 현상을 나타내고 있다.
이 현무암은 구멍이 많고 점착성이 있으며 검은 빛깔로서 가옥이나 담장 등에 많이 이용되고 있다.
<화산활동>
360여 개에 달하는 측화산(기생화산)은 성산층 및 화순층 퇴적기에 형성된 것과
최후의 후화산활동의 산물인 제5분출기에 속하는 것으로 구분된다.
남부해변에서는 용암과 바다가 만나 육각기둥을 이루는 주상절리를 관찰할 수 있다
제주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화산도로서 화산지형의 특색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원지형을 많이 보존하고 있어 침식윤회로 보아 유년기에 속한다.
주봉인 한라산을 중심으로 하여 동서사면은 매우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으나 남북 방향에서는 약간 급한 사면을 갖는다.
전체적으로 보아 순상화산에서 볼 수 있는 아스페테형 화산이라 할 수 있다.
이런 모양은 제주도를 형성하는 화산분출이 전반기에는 광역분출이었으나
적어도 후반기에 들어와서는 백록담을 화구로 한 중심분출이었다는 데 기인한다.
그리고 주봉인 한라산에서 사방으로 흐르는 하천은 복류하여 지하수를 이루기 때문에 평상시에는 건천을 이루며
이런 지하수는 해안 부근에서 해수에 밀려 용출하기 때문에 본도의 취락은 이 용천을 중심으로 해안에 치우쳐 큰 집촌을 이룬다.
제주도에는 많은 동굴이 있다. 대부분 화산 활동 과정에서 용암의 분출로 생긴 용암 동굴이다. 유명한 동굴로 만장굴과 쌍용굴이 있다.
<부속도서>
형성 과정에서 설명한 기생 화산의 활동으로 제주도 주변에 크고 작은 섬들이 생겨났다.
* 사람이 사는 섬 *
비양도: 제주시 한림읍에 위치한 섬이다. 면적은 0.5㎢ 이다.
우도 : 제주도의 동쪽에 위치한 섬으로, 제주도의 유인도 중 가장 큰 섬이다
가파도 : 서귀포시 대정읍에 위치한 섬이다.
마라도 : 가파도에서 멀지 않은 남쪽에 있는 섬이다. 대한민국의 최남단이다.
추자도 : 추자도(楸子島)는 제주시에서 가장 북서쪽에 위치한 섬이다.
제주해협에 있으며 총 4개의 유인도와 38개의 무인도로 이루어져 있다.
*사람이 살지 않는 섬 *
차귀도 : 제주시 한경면에 있는 무인도이다.
형제섬 : 서귀포시 대정읍에 있는 무인도 이다.
범섬 : 서귀포항 인근 남쪽 바다에 있는 무인도이다.
숲섬 : 범섬 부근에 있는 무인도이다.
관탈도 : 추자도와 제주도 사이에 있는 무인도이다.
<전설>
설문대 할멈 : 제주도를 만들었다는 거대한 여신이다.
산방산 : 원래 위치는 한라산의 꼭대기였다. 옥황상제에 의해 현 위치로 옮겨졌는데, 이때 움푹파인 곳이 백록담이 되었다.
영실기암: 기암괴석이 많은 영주 10경의 하나이다. 오백장군이라고도 부르는데, 설문대 할망의 500명의 자식이라 한다.
이어도 : 제주도의 전설에서 유토피아로 그려지는 섬으로, 현재의 이어도로 주장되기도 한다.
용두암: 제주시 해안가에 위치한 용암이 굳어진 바위이다. 바닷속에 잠긴 부분까지 40m 정도의 바위가 용 모양을 이룬다.
삼성혈: 고을나, 양을나, 부을나의 삼신이 솟아난 곳이라 한다.
<기후>
제주도는 한국 최남단에 위치하고 근해에 난류가 흐르기 때문에 온대 기후를 이루고 있다.
연중 온난하여 제주시 지역의 연평균기온은 15.3℃ , 최난월평균기온(8월) 25.9℃, 최한월평균기온(1월), 4.5℃ 이며,
서귀포시 지역은 이보다 더 높아 한국에서는 가장 연교차가 적은 해양성 기후를 보이고 있다.
연강수량은 북제주지방은 1,500 ~ 1,600mm, 남제주지방은 이보다 많은 1,600 ~ 1,800mm를 보여, 한국 최다우지에 속한다.
눈은 해발 200m 이하의 해안 저지대에는 대개 내리자마자 녹아버려 잘 쌓이지 않아 강설량이 적지만,
1,000m 이상의 한라산록에는 상당히 많은 눈이 내려 쌓이며, 5월까지도 잔설로 남아 있는 때가 있다.
‘풍다(風多)’로 알려진 제주도에서 바람은 연중 강하게 불며
특히 겨울철에는 10m/sec를 넘을 때가 보통이며 20m/sec 이상 부는 경우도 많다.
겨울 이외의 계절에도 태풍과 저기압의 통로이기 때문에 자주 바람이 불어 육지와의 교통이 두절되는 일이 적지 않다.
<식물>
제주도의 생태계는 한라산의 고도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인다.식물 식물분포는 아열대·온대·한대식물 등 3대에 걸쳐 수직으로 분포한다.
제주도의 해안 지역은 연중 대부분의 기간 동안 영상의 기온을 유지하는 아열대성 기후가 나타나며,
비자나무, 동백나무, 너도잣밤나무와 같은 상록 활엽수의 자생지가 있다.
워싱턴 야자수, 소철나무와 같이 대한민국의 다른 지역에서는 야외에서 기르기 힘든 외래종도 잘 자란다.
제주도의 중산간일대에는 넓은 초지가 있어 예로부터 말을 방목하였다.
한라산 정상까지 높이 올라갈수록 벚나무 자생 군락과 같은 낙엽 활엽수와 산철쭉과 같은 관목림 지역,
그리고 구상나무와 같은 침엽수림 지역이 차례로 나타난다.
제주도에 분포하는 식물의 종류는 약 1,700여 종으로 식물의 보고를 이루고 있고,
천연 기념물만 해도 식물이 8종이나 되어 학술연구나 관광자원으로 중요한 구실을 하고 있다.
한라산록대에는 복가시나무·후박나무·녹나무 등 난대성 상록활엽수림이 많고,
중복에는 서나무·굴참나무·산벚나무 등 온대낙엽수림이 울창하며, 1,000m 이상의 고지대는 고채목·구상나무 등 산림이 우거지고
산정에는 누운소나무와 고산식물, 그리고 산죽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이 밖에 제주도 특유의 관상용으로서는 한란이 있으며, 산 속의 고목에 붙어서 피어나는 풍란이 있고,
하얀 꽃이 만개할 때면 향기가 강렬하게 퍼지는 토끼섬의 문주란도 널리 알려져 있다.
<동물>
다양한 식물분포에 비하여 동물의 분포상은 매우 빈약하다. 제주도에는 예로 부터 맹금이나 맹수가 없고 노루나 제주족제비가 있었다.
조류는 제주 특유의 제주딱다구리·박새·곤줄박이 등 50여 종에 달한다.
제주도에는 원래 까마귀가 많고 까치는 없었으나 지난 1989년 일간스포츠신문사가 50여 마리를 방사하여 그 수가 크게 불었다.
제주도의 입장에서 외래종인 까치 개체수의 증가는 제주도 생태계 교란의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하였다.
<형성 과정>
1 단계: 약 120만 년 이전(1200000), 바닷속에 형성된 마그마가 분출하기 시작하였다.
2 단계: 약 70만 년 전(700000)까지, 화산활동으로 섬이 생겨났다.
※ 2 단계 화산활동이 끝난 뒤 약 1만 년(690000년까지)간 화산활동이 없었다.
3 단계: 약 30만 년 전(300000)까지, 화산 활동이 다시 시작되어 한라산이 생겨났다.
4 단계: 약 10만 년 전(100000)까지, 화산 활동으로 해안지대가 생겨났다.
5 단계: 약 2만 5천 년 전(25000)까지, 한라산 주변에 기생 화산이 활동하여 오름을 만들었다.
6 단계: 현재까지, 화산활동이 멈추고 풍화와 침식 작용에 의해 지금의 지형을 이루었다.
주상절리...............
화산암(火山岩) 암맥이나 용암(熔岩), 용결응회암(熔結凝灰岩) 등에서 생긴다.
절리(joint)는 암석의 틈새기나 파단면(破斷面)으로서, 거기 따라가면서 일그러짐(변위)이 없거나 또는 거의 일그러짐이 인정되지 않는 것을 말한다.
면(面)에 평행한 일그러짐이 있는 것을 단층(斷層)이라고 한다.
화강암이나 두꺼운 괴상사암(塊狀砂岩) 등과 같은 균질의 암석의 경우에는
일그러짐을 인정할 실마리가 없기 때문에 절리와 구별하기가 어렵다.
절리에는 쪼개지는 방향에 따라서 판상(板狀)절리와 주상절리가 있는데,
주상절리는 단면의 모양이 육각형이나 삼각형의 장주상(長柱狀:긴 기둥 모양)을 이루는 절리를 말한다.
화산암암맥이나 용암, 용결응회암에서 보인다. 제주도 해안에는 기둥 모양의 주상절리가 절벽을 이루고 있으며,
유명한 정방폭포와 천지연폭포가 이런 지형에 형성된 폭포이다
하루방들
주상절리.....
용암이 바다물을을 만나
갑자기 식어 굳어진 바위들
산방산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安德面) 사계리(沙溪里) 해안에 있는 종상화산(鐘狀火山).
높이 395m. 조면암질 안산암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형태가 특이하다.
남서쪽 기슭, 해발고도 200m 지점에 산방굴(山房窟)이라는 자연 석굴이 있다.
그 안에 불상을 안치하였기 때문에 이 굴을 산방굴사(山房窟寺)라고도 한다.
굴 내부 천장 암벽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은 산방산의 암벽을 지키는 여신 ‘산방덕(山房德)’이 흘리는 사랑의 눈물이라는 전설이 있다.
산의 남쪽 해안에는 성산포층(城山浦層)이 노출되어 있고 심한 해식(海蝕)으로 단애(斷崖)가 형성된 암석해안을 이룬다.
여기에 하멜 표류 기념탑(漂流記念塔)이 있다.
산방산에서 본 용머리 해안...하멜이 표류되었던 곳
산방산 석굴
용머리 해안에서 보이는 산방산
용머리해안...............
산방산 해안에 있으며, 바닷속으로 들어가는 용의 머리를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겉으로 보면 평범하지만 좁은 통로를 따라 바닷가로 내려가면 수천 만 년 동안 층층이 쌓인 사암층 암벽이 나온다.
180만 년 전 수중폭발에 의해 형성된 화산력 응회암층으로
길이 600m, 높이 20m의 현무암력에 수평층리·풍화혈·돌게구멍·해식동굴·수직절리단애·소단층명 등이 어우러져 절경을 이룬다.
해안 오른쪽에는 반원형으로 부드러운 검은모래사장[黑沙場]이 펼쳐져 있다.
전설에 의하면, 제주특별자치도에서 장차 왕이 태어날 것을 안
중국 진(秦)의 시황제가 호종단을 보내 제주특별자치도의 혈을 끊으라 하여,
호종단은 이곳에서 왕후지지(王后之地)의 혈맥을 찾아내
용의 꼬리와 잔등 부분을 칼로 내리쳐 끊자 시뻘건 피가 솟아 주변을 물들이며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고 한다.
임무를 마친 호종단은 차귀섬으로 배를 타고 나가려다 한라산 신의 노여움을 받아 태풍에 목숨을 잃었다는 전설이 전하고 있다.
해안으로 내려가는 길에 1653년 하멜이 탄 선박이 난파되어 이곳에 표착했던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하멜표류기념비가 있는데,
1980년 한국국제문화협회와 주한 네덜란드대사관이 공동으로 세운 것이다.
서귀포시은 2003년 12월까지 이 일대 55만㎡에 해양수족관·네덜란드박물관·범선·풍차·분재원·화훼단지·승마장·전망대 등을 비롯해
공공 편익시설·숙박시설·상가시설을 지어 대규모 관광지로 꾸밀 예정이다.
주변에 송악산·추사적거지·제주조각공원·화순해수욕장·마라도 등 관광지가 많다.
용머리 해안
해안을 따라 산책로가 이어진다.
하멜이 타고온 배의 모형
제주의 묘지
휴화산 화구............
비자림............
1993년 8월 19일 천연기념물 제374호로 지정되었으며 문화재청에서 소유하고 있다.
구좌읍 평대리에서 서남쪽으로 6km 되는 지점에 448,165㎡ 면적에 500∼800년생 비자나무 2,570그루가 밀집하여
군락을 이루고 있는데, 단순림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이다.
나무의 높이는 7∼14m, 지름은 50∼110cm, 수관폭은 10∼15m에 이른다.
이곳에 비자나무 숲이 이루어진 유래는 마을의 무제(巫祭)에 쓰이던
비자 종자가 사방으로 흩어져 자라 식물상을 이룬 것으로 추정된다.
예로부터 섬의 진상품으로 바쳤던 비자나무의 열매인 비자는 구충제로 많이 쓰였고, 음식이나 제사상에 오르기도 하였다.
지방분이 있어 비자유를 짜기도 하는데, 기관지 천식이나 장 기능에 효험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나무는 재질이 좋아 고급 가구나 바둑판을 만드는 데 사용되어왔다.
숲 가운데에는 제주특별자치도에서 최고령목이라고 하는 800년 이상 된 비자나무가 있는데,
높이 25m, 둘레 6m로 비자나무의 조상목이라고도 한다.
나도풍란, 콩짜개난, 흑난초, 비자란 등 희귀한 난과식물도 자생하며,
이외에도 천선과나무, 자귀나무, 아왜나무, 머귀나무, 후박나무 등 여러 종류의 나무들이 있다.
1992년 이곳에 산책로를 만들었다.
비자림 숲
우도............
우도는 소가 누워있는 모습과 비슷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우도의 대표적인 풍경으로 우도팔경이라 하여 낮과 밤(주간명월, 야항어범), 하늘과 땅(천진관산, 지두청사),
앞과 뒤(전포망대, 후해석벽), 동과 서(동안경굴, 서빈백사)를 손꼽습니다.
또한 우도는 영화 “시월애”, “인어공주” 를 촬영한 장소로서 서정적인 제주 섬마을 풍경과 아늑한 풀밭의 정취,
푸른 제주바다와 맞닿은 하얀 백사장 풍경이 무척 인상적인 곳으로 한라산과 함께 제주도의 대표적인 관광지 입니다.
우도에 사람들이 정착하여 살기 시작한 것은 조선조 헌종 9년(1843)경부터입니다.
물론 그 이전부터 사람들의 왕래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우도에서 생산되는 해산물을 채취 하기위해,
그리고 숙종 23년(1679) 이후 목장이 설치되면서 부터는 국마를 관리, 사육하기 위하여 사람들의 왕래가 빈번했습니다.
순조23년(1823)부터 제주 백성들이 계속하여 우도의 개간을 조정에 요청하게 되었고 헌종8년에는 이를 승인 받게 됩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우도에 들어가 땅을 개간하기 시작 한 것은
그간 우도에서 방목하던 마필을 다른 목장으로 반출한 이후인 헌종9년 봄 부터입니다.
우도주민의 대부분은 우도에서 태어나고 자라난 본토박이들입니다.
과거 우도의 주민들은 우도 내의 같은 마을에서 결혼하는 경우가 많아
주민들의 대부분은 우도 내에 외가, 처가, 친정, 친가를 두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지역적 연고관계로 우도 주민들의 대부분은 앞으로도 우도에서 계속해서 살아가길 원합니다.
"조상 대대로 살아온 곳이기 때문에 ...." "나와 내 가족이 태어나서 자라 온 곳이기 때문에..." 라고 하는
혈연적, 지역적 연고 의식이 강합니다.
우도 주민의 성씨는 김해김씨, 제주고씨, 제주양씨, 파평윤씨, 곡부공씨, 진주 강씨, 진주정씨등이 대성씨를 이루고 있는데
이중 단위 마을에서 영향력 있는 성씨는 조일리에서 김해김씨와 제주고씨 오봉리에서 제주고씨로 집성촌의 형태를 보이고 있으나
뚜렷한 혈연중심의 사회구조를 나타내고 있지는 않습니다.
섬의 남동쪽 끝의 쇠머리오름(132m)에는 우도등대가 있습니다.
남쪽 해안과 북동쪽 탁진포를 제외한 모든 해안에는 해식애가 발달하였고
한라산의 기생 화산인 쇠머리 오름이 있을뿐 섬 전체가 하나의 용암대지이며 넓고 비옥한 평지가 펼쳐집니다.
주요 농산물은 고구마, 보리, 마늘 등이 생산됩니다.
부근 해역에서는 고등어, 갈치, 전복 등이 잡힙니다. 소, 돼지 등의 사육도 활발하며 해녀들의 축산지로도 유명합니다.
우두 해수욕장....이곳 모래사장은 조개껍질 모래라 하며
절대 반출불가
삼성혈...............
1964년 6월 10일 사적 제134호로 지정되었다.
제주도의 고(高)·양(梁)·부(夫)씨의 3시조 격인 고을나(高乙那)·양을나(良乙那·梁乙那)·부을나(夫乙那)
세 신인(神人)이 각각 솟아났다는 신화가 전하는 유적으로 모흥혈(毛興穴)이라고도 한다.
제주시 한 가운데에 있는 제주칼호텔과 제주도민속자연사박물관 사이
송림이 우거진 숲 한가운데에 세 개의 구멍이 각각 수m의 간격을 두고
품자(品字) 형을 이루고 있는데 그 깊이가 바다와 통한다는 위쪽 구멍은 둘레가 6자이고 아래의 두 구멍은 각기 3자이다.
신인은 수렵생활을 하다가,
지금의 온평리 바닷가에 떠밀려온 나무궤짝 안에서 나온 벽랑국(碧浪國)의 세 공주를 각각 맞이하여 혼인하고,
세 공주가 가지고 온 오곡(五穀)의 씨앗, 송아지, 망아지를 가지고 농경생활을 시작하면서 오늘의 제주도를 이루었다고 전한다.
삼성혈이 성역화된 것은 1526년(중종 21) 제주목사 이수동(李壽童)이 혈(穴) 북쪽에 홍문(紅門)·혈비(穴碑)를 세우고
돌로 280여 자[尺]의 담을 쌓아 고·양·부씨의 후손들에게 혈제(穴祭)를 지내게 하면서 시작되었다.
1698년(숙종 24) 혈 동쪽에 위패를 모시는 삼을나묘(三乙那廟:지금의 三聖殿)를,
1827년(순조 27) 제향을 받드는 전사청(奠祀廳)을, 1849년(헌종 15) 숭보당(崇報堂)을 세웠다.
그밖에 석비(石碑)가 부근에 있다.
제례는 고·양·부 3성의 후손들이 매년 양력 4월 10일에 춘제(春祭),
10월 10일에 추제(秋祭)를 삼성전에서 지내는데 헌관은 3성이 돌아가며 맡고 있다.
12월 10일에는 제주도민이 건시제(乾始祭)로 혈단(穴壇)에서 지내는데 초헌관은 도지사,
아헌관과 종헌관은 기관장이나 유지 중에서 선임한다.
이 구멍 속에는 빗물이나 눈이 고이지 않는다고 하며,
주위에 수령 500여 년 이상의 노송들과 녹나무·조록나무 등
수십 종의 고목이 울창하게 서 있는데 나무들이 거의 이 구멍을 향하여 있어 신비로움을 더한다.
제주 고유의 건축물과 제사 모습 등이 남아 있는 유적지이며,
오랜 역사와 끊이지 않는 전통문화를 지닌 자긍심을 간직하고 있는 성소(聖所)이다. 보호면적은 2만 9647㎡이다.
관련유적으로 벽랑국의 세 공주가 타고 온 나무상자가 발견된 해안 황루알,
3신인이 세 공주와 혼인한 혼인지(婚姻池:제주기념물 17), 이들이 혼인한 뒤 영역을 가리기 위하여
화살을 쏘았다는 삼사석(三射石:제주기념물 4) 등이 있다.
삼성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