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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 토지길<경남 하동>

하늘금2002 2013. 1. 1. 16:12

 

섬진강을 따라 가는

박경리 토지길<경남 하동>

 

 

 

 

 

 

 

섬진강을 따라가는

박경리 토지길1

 

‘하동’이라 하면 많은 이들이 ‘서희아씨’가 주인공인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를 생각한다. 그만큼 소설 토지에는 섬진강변을 따라 펼쳐지는 아름다운 남도 땅의 풍경이, 그곳에서 살아온 민초들의 삶과 애환이 짙게 스며들어 있다. 그 짙은 남도의 중심을 걷는 길이 바로 박경리 토지길 1구간이다. 토지의 주무대가 된 최참판댁을 거쳐 가는 도보여행길인 18km의 1구간. 그 시작은 섬진강 평사리 공원이다. 섬진강변에 조성된 이 공원은 물이 깊지 않고 강가에는 넓은 모래밭이 펼쳐져 있어 아름다운 섬진강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한때 섬진강변을 누볐을 나룻배가 이제는 강물 위가 아닌 잔디밭에 서서 옛 시절을 추억하고 있다.

 

공원을 나서면 평사리 들판이 눈앞에 펼쳐진다. 토지 속에서 만석꾼 최참판댁 살림을 상징하던 그 너른 들판. 가을이면 황금빛으로 물들던 끝없는 지평선을 연출하던 공간이 바로 이곳이다. 실제로 눈앞에 펼쳐지는 그 너른 들판은 남도의 풍성한 가을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계절에 따라 만개한 들꽃으로 아름답게 채색되는 이 들판의 길 중간에 소나무 몇 그루가 눈에 들어온다. 이곳이 예전에는 섬진강 위에 떠 있던 섬이었으며 주변이 간척되어서도 여전히 섬처럼 남아있다.

 

이 너른 들판의 끝에 동정호가 있다. 가을 달빛이 잦아들면 사방이 고요해질 만큼 환상적이라는 이곳은 중국 악양의 지명과 똑같다. 중국 악양만큼 아름답다하여 악양의 지명이 붙은 곳이 많은데, 동정호도 마찬가지다. 소정방이 당나라 악양의 동정호와 흡사한 모습이라 하여 이름 붙였다는 동정호는 현재 늪지대로 변하여 다양한 생물들이 공존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 시절 달빛이 스며들던 그 모습은 지금은 확인할 수 없다. 대신 철새들은 여전히 동정호에 날아들고 있다. 동정호에서 한참을 걸으면 신라시대에 축조된 고소성에 도착한다. 기계로 찍어낸 듯 반듯한 돌들이 벽을 이루고 있는 이곳은 서남쪽을 제외하고는 모든 곳이 온전하게 남아있는 성으로, 성 위에 오르면 평사리의 너른 들과 지리산이 눈에 들어온다. 적당한 위치에 잠시 짐을 풀고 땀을 식히면 주변을 지나는 시원한 바람이 여행객의 지친 다리를 위로한다.

 

성에서 내려오면 평사리 들판은 끝이 나고 아스팔트길이 나온다. 그리고 이 길 중턱에 소설의 주무대가 된 최참판댁이 나타난다. 소설 속 최참판댁을 14개의 한옥으로 재현해놓은 이곳은 가구부터 생활소품까지 갖추고 있어 현실감을 더하는 곳으로, 당장이라도 평사리들판 쪽에서 똘망한 눈을 가진 서희아씨가 뛰어올 것만 같다. 최참판댁 옆으로는 토지 속의 인물들이 살던 초가도 보인다. 긴 시간 박경리 작가가 써내려간 토지는 이렇게 하동 땅에서 재현되고 역사의 일부가 되어 살아난다. 이곳에서는 10월이 되면 전국의 문인들이 참석하는 ‘토지문학제’가 개최된다. 하동을 소재로 한 문학작품들이 발표되고, 섬진강과 평사리 들판을 그리는 풍경그리기대회도 열린다고 하니 여행 준비할 때 참고하면 좋다.

 

최참판댁을 지나면 조부잣집이라 불리는 조씨고가가 나온다. 실제 최참판댁의 모델이 되었다는 곳으로, 1830년경 지어진 기와집이다. 소나무를 쪄서 건물을 짓는데 이용한 것이 특징인 이 고택은 밥 짓는 연기가 끊이지 않았다는 곳으로, 조부잣집 쌀뜨물 때문에 섬진강이 뿌옇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소문난 만석꾼이였다. 오랜 시간 비바람에도 그 위엄을 잃지 않은 모습으로 여행객을 맞이하는 이곳은 아직도 후손들이 기거하고 있다.

 

조부잣집을 지나면 악양천 중간에서 물이 넘는 것을 막으려고 조성한 취간림과 섬진강과 맞닿은 곳에 자리한 악양루가 보인다. 섬진강변의 따스한 바람이 평사리 들판의 초록 내음을 한껏 머금고 여행객을 응원한다. 그렇게 바람의 응원을 받으며 화개장터에 도착하면 1구간은 끝이 난다. 시간을 뛰어넘어 역사를 품고 있는 이 길에서는 어릴 적 밤새워가며 읽었던 소설 속 주인공들이 여행자의 지친 몸을 보듬어준다.


 

 

섬진강을 따라가는

박경리 토지길2

 

화개장터에서 시작하는 2구간. 경상도 하동과 전라도 구례를 잇는 중간지점에 들어서있는 이곳은 조선시대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5일장이었다. 이곳에서 출발하여 도착하는 곳은 십리벚꽃길(혼례길)이다. 화개장터에서 쌍계사까지 25km구간에 걸쳐 벚꽃나무가 장관을 이루는 이곳에서는 흐드러지게 만개한 벚꽃으로 절정을 이루는 4월초, 화개장터벚꽃축제가 개최된다.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벚꽃잎이 바람결에 흩날리며 세상을 하얗게 덮는 벚꽃의 절경을 볼 수 있는 시기를 잘 선택하는 것이 걷기 여행의 핵심이 될 것이다.

 

아름다운 십리벚꽃길을 지나 쌍계사 쪽으로 걷다보면 차 시배지가 나온다. 최상품임을 부정할 수 없는 지리산 녹차 밭. 차밭의 초록색 물결이 씁쓰름한 찻잎 내음을 머금고 불어온다. 이곳에서 매년 5월 하동야생차문화축제가 펼쳐진다. 우리나라의 오랜 다도문화와 야생차를 주제로 녹차음식전문점과 시음코너가 들어서고 녹차를 이용한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또 넓게 펼쳐진 녹차 밭에서 직접 찻잎을 따는 것부터 시작, 녹차가공공장에서의 녹차 덖기 체험과 비비기 체험까지 녹차와 관련된 모든 체험을 경험할 수 있다. 또 다도교육도 받을 수 있어 차를 대하는 마음과 녹차의 은은한 향을 동시에 만날 수 있다고 하니, 도시에서는 할 수 없는 귀한 경험을 놓치지 말자.

 

840년에 지어진 쌍계사는 경내에 국보와 보물이 많으며 차와 인연이 깊어 근처에 차시배추원비까지 있다. 정갈하게 정돈된 길이며 소리 없이 흐르는 계곡까지 청아함을 간직한 청계사 입구에는 양옆으로 서있는 두 개의 바위, 쌍계석문바위가 길손을 맞이한다. 유학자 최치원이 왼쪽엔 쌍계, 오른쪽엔 석문이라는 글자를 남겨 더욱 유명하다. 그렇게 입구를 지나면 일주문과 금강문을 지나 부처의 세계로 들어선다. 찾는 사람이 많은 유명한 사찰임에도 불구하고 쌍계사는 단아함을 잃지 않는다.

쌍계사를 산책하듯 돌아 밖으로 나오면 숨 가쁜 오르막이 기다린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오르면 지리산 10경 중 하나인 불일폭포가 눈앞에 나타난다. 높이 60m, 폭 3m의 물줄기는 폭포 아래의 깊은 못으로 떨어지며 장관을 이루고, 그 시원한 폭포소리에 여행자는 오르막길을 오르느라 붉게 달궈진 뺨을 식힌다.

 

폭포를 지나 이제 한숨 돌리겠다 싶으면 또다시 눈앞에 약간 급한 경사길이 여행자를 재촉한다. 그 길을 오르고 오르면 불일암을 지나고, 폭신한 흙길을 따라 봉명산장을 지나면 국사암에 도착한다. 쌍계사의 말사(본사인 쌍계사의 관리를 받는 작은 절 혹은 암자)이다. 앞에는 사천왕수라 불리는 1200살이나 된 느릅나무가 있다. 진감선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땅에 꽂자 싹이 나고 나무로 자라 지금의 느릅나무가 되었다는 전설이 있는 이 나무는 굵은 가지가 네 방향으로 자라난 독특한 모습을 하고 있다. 국사암은 한여름이면 색색의 연꽃들이 연못 가득 피어난다. 연꽃이 없어도 연잎으로 덮여있는 연못은 계절에 상관없이 고즈넉하고 소담한 국사암의 풍취를 품고 있다.

 

그렇게 연못을 바라보며 땀을 식히면 박경리 토지길 2구간이 끝이 난다. 어느새 중천에 떠있던 해는 산마루 너머로 붉은 그림자를 남기며 사라지고 있다. 지리산 중턱, 무릉도원에서 도시의 각박한 삶에서 묻혀서 온 피곤, 고민과 욕심을 버리고 새롭게 한발을 내딛을 희망을 품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