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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돌 질마재따라 100리길<전북 고창>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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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돌 질마재따라 100리길<전북 고창>

하늘금2002 2011. 9. 16. 14:27

 

 

고인돌 질마재따라 100리길<전북 고창>

 

 

 

 

 

 

 

 

 

 

 

1구간 : 고인돌길

 

100리가 조금 넘는 길을 따라 조성된 고인돌 질마재 따라 100리길의 첫 구간인 고인돌길. 길가의 작은 돌멩이 하나도 함부로 볼 수 없는 곳. 길가의 바위 하나에도 천년의 시간을 넘어선 역사가 스며있을 수도 있는, 그래서 여행자의 발걸음이 조심스러워 지는 길. 그 길의 첫 시작은 고인돌 박물관이다.

고창은 세계적으로도 수많은 고인돌이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첫 시작점인 고인돌 박물관에서 공부를 하고 출발하면 길 위에 우두커니 서있는 바위도 그냥 쉽사리 지나칠 수 없게 된다. 작은 바위 하나하나가 모두 역사의 흔적을 품은 고인돌 길에서는 알면 알수록 더욱 신기하고 즐거운 시간이 되기 때문이다. 박물관과 외부전시장으로 이뤄진 고인돌 박물관은 한반도 초기 청동기 문화에 대해 전시가 되어 있으며 외부전시장에는 선사시대 체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이제 정말 시간을 품은 고인돌과 만나는 고인돌 유적지로 출발한다. 고인돌이 얼마나 많으면 사람 보는 것이 더 힘들다는 이 길은 느긋한 걸음으로 천천히 걸으면 10분정도 걸린다. 고창읍 도산리에 있는 고인돌 밀집지역인 고인돌 유적지는 동서로 약 2.5km 정도에 달하는 들판에 총 447기의 고인돌이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있다. 한국인, 외국인을 떠나 보는 사람에게 묘한 여운을 남기는 이곳은 산등성이부터 시작된다. 믿을 수 없는 크기에 한번 놀라고, 믿어지지 않는 그 수에 한 번 더 놀라게 하는 이곳. 3km 남짓 되는 유적지를 산책하듯 느릿느릿 둘러보며 상상할 수 없는 저 먼 역사의 시간을 되새김질한다.

고인돌 유적지에서 원평마을로 향하는 길과 매산재로 향하는 갈래길에 도착한다. 원평마을은 짧지만 고인돌과 함께 걷는 시간이 줄어들 것이며, 매산재를 선택한다면 조금 더 걷게 되지만 그만큼 고인돌과 생태연못, 생태습지가 함께하는 도보길을 걸을 수 있다.

매산재로 향하는 길에는 오베이골 생태연못이 나타난다. 연못위로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어 어리연꽃과 수련, 노랑꽃, 창포 등 연못에서 자라고 있는 갖가지 식물들을 자세히 볼 수 있다. 이곳은 쑥부쟁이와 억새밭의 자생지이기도 한 습지식물의 보고이다. 또 여행자의 걸음 옆으로 물잔디, 네가리, 검정말, 왕버들나무등의 습지식물들이 생소한 모습으로 인사를 건넨다.

그렇게 식물들에게 인사를 건네며 한참을 걷다보면 운곡서원앞에 자리한 운곡저수지가 눈에 들어온다. 이곳은 식수로 공급 될 만큼 깨끗한 물을 머금고 있다. 저수지를 둘러 감으며 마을로 들어가는 길은 인적도 드물고 지나다니는 차도 없어 호젓한 풍취를 보인다. ‘바람이 먼저 지나가는 길’이란 표현이 딱 어울리는 곳이 바로 이곳 운곡저수지 길이다. 저수지 위로 안개가 맺히는 날엔 흡사 구름 속을 산책하는 듯 환상적인 분위기로 여행자의 가슴을 뛰게 한다. 무엇보다 운곡고인돌로도 불리는 동양최대의 고인돌을 만날 수 있다. 높이 5m, 가로길이 7m에 무게 만해도 300여 톤에 이르는 엄청난 크기다. 그 거대한 크기 뒤로 시간의 흔들림 속에서도 변함없이 이곳에 우뚝 서있었을 그 3천년의 시간은 비와 바람에 닳고 닳아 반들반들해진 표면이 말해준다.

운곡저수지를 지나면 용계리 청자도요지가 보인다. 흙을 빚어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푸른빛의 자기를 만들어내던 곳, 이곳은 이제 약3,200㎡에 걸쳐 작업장과 건물터로 이루어져 있다. 수많은 도공들이 이곳에서 하늘을 닮은 고운 빛을 품은 자기들을 생산해냈을 그 시간이 그려진다. 그러고 보니 이곳은 맑은 운곡저수지의 물이 여행자를 따라 한참을 함께 동행한 길. 맑은 물과 묵직한 고인돌, 그리고 이제는 터만 남아있는 청자가마터. 시간이 흘러 그 터만 남아있지만 흐르듯 아름다운 풍광은 그 너머로 여행자의 가슴에 비친다.

 

 

2구간 : 인천강 복분자길

같은 흙길이라 해도 지역마다, 동네마다 그 감동의 울림은 서로 다른 색을 가지고 있다. 2구간은 7.7km의 거리로 2시간 반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 특히 2구간 인천강 복분자길이라는 이름처럼 복분자 최대 생산지 고창은 선운산도립공원내에서 열리는 복분자축제가 유명하다. 매년 6월 복분자를 수확할 때면 다양한 이벤트와 체험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고창의 질 좋은 복분자와 복분자 가공제품들을 저렴한 가격에 직거래로 구매할 수 있다. 특히 복분자주의 경우 바닷바람을 맞고 자란 선운사 지역의 경우 붉은 빛과 단맛이 강해 전국에서도 최상품으로 친다. 이 중에서도 1등급 복분자를 모아 저온에서 발효해 향과 영양가를 보존하며 빚은 술이 바로 복분자주. 고창을 걸으며 잠시 휴식 시간 때 복분자주 한잔을 음미하는 것도 좋은 추억이 될 것이다.

길은 호수(원평저수지)를 옆에 두고 있는 원평마을에서 시작하여 인천강을 옆에 두고 있는 계산마을로 연결된다. 1구간의 끝이자 2구간의 시작인 원평마을. 맑고도 맑은 호수를 품고 있는 그 곳이 고요함과 고즈넉함을 느끼기에 충분한 곳이었다면, 고창 인근 산지에서 흘러나오는 물들이 모여 드는 곳인 인천강을 품고 있는 계산마을은 풍요로움이 느껴지는 곳이다. 풍천장어라 불리는 뱀장어가 하구에서 잡히는 인천강은 고창의 젖줄로, 주변 산이나 구릉에서 흘러내린 물들이 이곳으로 녹아들 듯 합쳐져 강줄기를 이룬다. 고창의 대지를 흐르는 인천강은 잔잔함이 호수와도 같아서 강변을 날아다니는 새들의 모습을 거울처럼 비춘다.

계산마을을 지나면 조선 전기의 문신 신말주 선생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 사당인 덕천사에 도착한다. 소박한 모습의 이 사당은 전형적인 조선 후기 사당 형식으로 지어졌으며, 인천강 위로 춤을 추듯 날아드는 두루미를 볼 수 있다.

이곳에서 조금 더 가면 클라이밍을 즐기는 사람들이 한번쯤은 꼭 올라봤다는 유명한 바위, 할매바위가 나타난다. 강가에 드리운 이 커다란 바위는 90도로 강을 향해 달려드는 모습이 절벽이라 부르는 것이 나을 성 싶은 모습이다. 울퉁불퉁한 바위 표면에는 줄 하나에 의지한 채 사람들이 매달려 바위를 오르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위의 그늘에는 강태공들이 인천강에 낚시를 드리우고 시간을 보낸다. 가끔 큰 월척들이 잡혀서 낚시명당으로도 유명하다.

1km 정도 걸어가면 아산초등학교가 나온다. 그 뒤를 돌아 오르는 나지막한 뒷산에서 사람의 모습을 한 바위가 학교를 내려다보고 있다. 바로 병바위이다. 오똑한 콧날, 훤한 이마, 머리 위로 몇 남지 않은 머리카락이 얼핏 보고 지나쳐도 사람얼굴을 하고 있다. 옛날 술취한 신선이 집어던진 병이 거꾸로 세워져 지금의 바위가 되었다는 전설이 있는 이 바위는 소반바위 또는 이승만 바위로도 불렸다.

병바위를 등 뒤로 하고 인천강길로 내려서면 한동안 외로울 수 있는 도보길을 인천강이 동행해준다. 물 흐르는 소리마저 속으로 품어 마치 호수처럼 고요한 인천강은 여행자에게 고요가 주는 음악을 들려준다. 그렇게 걷다보면 호암다리와 강정다리를 건너게 되고, 연기마을 입구에 도착하면 2구간 인천강 복분자길 7.7km는 끝이 난다. 강둑을 따라 고창의 풍요로움이 강물 소리를 따라 흐르는 곳. 인천강 복분자길은 같은 길, 다른 느낌의 도보여행을 마음껏 느낄 수 있는 코스다.

 

 

3구간 : 질마재길

 

질마재는 미당 서정주를 키운 곳으로 유명하다. 질마재, 국화마을, 미당시문학관, 미당생가까지 탁월한 상상력과 시어의 감수성을 품은 미당 서정주를 만날 수 있는 3구간 질마재길에서 처음 만나게 되는 곳은 분청사기요지. 한때 수많은 도공들의 열정으로 뜨거웠을 이곳은 이제는 그 흔적만이 차갑게 남아있다. 15-16세기 청자를 만들던 분청사기 가마터인 이곳에서는 대접이나 접시, 항아리 등이 발굴되었는데 연꽃무늬와 모란무늬 등 독특한 무늬가 그려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주인을 잃어버린 분청사기요지를 지나 흙길을 걸어온다.

그 너머에는 숲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축축한 나무 기운이 묻어나는 소요사가 있다. 가파른 언덕 위에는 1000년 전까지만 해도 8개의 암자가 있었다는 전설이 내려오지만, 지금은 작지만 엄숙함이 묻어나오는 소요사만이 소요산 자락을 지키고 서있다. 백제 위덕왕 때 지어진 것으로 알려진 사찰로, 유명한 고승을 많이 배출한 절이다. 이곳에는 마을 사람들이 비를 기다리며 기원하던 서해용왕지위비가 있다.

암자를 지나면 미당이 시를 통해 노래하던 곳, 질마재에 도착한다. 소요산 자락을 넘나드는 높지 않은 야트막한 고개인 질마재의 원래 이름은 길마재였다. 그러나 미당의 시집 ‘질마재신화’가 알려지면서 질마재로 불리기 시작했다. 고갯마루에서는 주변이 시원하게 눈에 들어온다. 올망졸망 소요산 자락의 농가들과 들판, 변산반도까지도 눈에 들어온다. 이 고갯마루에서 내려와 오솔길을 지나면 미당의 고향마을인 국화마을에 도착한다. 돋움별마을로도 유명한 이곳은 마을의 모든 집과 담, 지붕에 국화, 마을사람들의 얼굴이 그려져 있으며 무엇보다 국화의 계절인 가을이 되면 300억 송이의 국화가 물결치며 숨은 듯 수줍은 향기를 바람에 실어 보낸다.

옆에는 폐교를 리모델링하여 만든 미당시문학관이 미당의 육필원고와 작품집, 애장품과 유품을 전시하며 길손들을 기다린다. 또 10분 거리에는 미당이 어린 시절을 보냈던 생가도 볼 수 있다. 옛 모습 그대로 복원한 이곳은 초가지붕에 황토로 지은 어린 시절 미당이 살던 그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다. 미당을 키웠다는 이곳의 바람은 여행자의 가슴에도 애틋한 감정의 꽃씨를 심어준다. 텃마루에 앉아 있으면 질마재를 넘어온 바람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미당생가에서 다시금 걷다보면 이번에는 짭조름한 바다내음이 먼저 여행자를 반긴다. 널찍한 갯벌, 전국의 모든 바지락이 나온다는 이곳 갯벌은 아름다운 어촌 100선에 선정된 하전갯벌 학습 체험장이다. 국내 최대 바지락 생산지로, 아름다운 풍경이 여행자를 사로잡는다. 이 갯벌을 지나면 백제시대부터 재래소금 생산지로 알려진 검당포가 나온다. 검당은 검단선사가 장사현에 들어와 첫 포교를 했다는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선운사가 세워지기 전 바다뿐이었던 이곳에서 검단선사는 도적과 마을 사람들에게 소금 만드는 법을 알려주고, 그들은 고마움을 선운사에 소금을 공양하며 표시했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선운사검단선사보은염선재라는 축제가 열린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라는 서정주 시인의 시처럼, 3구간 질마재길은 여행자로 하여금 누군가가 그리워지게 하는 아릿한 감정을 자극한다. 국화가 피어있는 계절이든 아니든 그것은 중요치 않다. 고창의 푸른 보리밭 들판과 소요산 자락을 돌고 돌아온 바람이 한쪽 가슴으로 스며들면 잊고 있던 감정이 고개를 든다. 그리고 누구나 시인이 된다.

 

 

4구간 : 보은길

4시간 정도가 걸리는 12.7km의 길, 4구간 보은길은 검단소금전시관에서 출발하여 진채선 생가에 도착한다. 판소리 대가 신재효 선생의 제자 국창 진채선 선생은 판소리 최초의 여자 명창으로 흥선대원군의 총애를 받았던 소리꾼이다. 경회루 낙성연에서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판소리를 부른 그녀는 가슴 저린 사랑이야기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녀를 총애한 흥선대원군 곁에 진채선을 두고 내려온 스승 신재효는 도리화가를 부르며 그녀를 향한 그리움을 달랬다고 한다.

선운사를 바라보며 다시 길을 나서며 걷게 되는 길이 ‘보은길’이다. 1500년 전부터 나무등짐 가득 소금을 담은 채 걸었던 흙길, 보은길은 나지막한 비탈을 올라 참당고개를 넘는다. 백제가요에까지 등장했을 만큼 오래된 이 길은 그 역사만큼 수많은 길손들의 이야기를 품고 있다. 백제시대에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부부가 있었는데 남편이 전쟁에 나가자 그를 기다리던 아내는 창담고개에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그 전설은 슬프지만 길만은 눈이 시리도록 아름답다. 멀리 그림처럼 보이는 선운사와 오랜 시간 사람들의 걸음으로 다져진 흙길은 단단하게 그 시간을 품고 있다.

고개마루를 넘으면 녹차밭에 둘러싸여있는 고요한 암자, 참당암에 도착한다. 선운사 암자 중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참당암은 대참사(大懺寺)라 불릴 정도로 암자임에도 불구하고 보물로 지정된 대웅전을 가지고 있다. 승려들이 수도도량하는 곳이어서 그런지 그 고요함이 더욱 깊어 여행자도 발뒤꿈치를 들고 살포시 걷게 한다. 꽃무릇은 9월이면 대웅전 뒤로 공작꼬리마냥 늘어져있고, 대나무 바람소리가 휴식을 선물한다.

참당암에서 고운 흙으로 다져진 흙길을 따라 사박거리는 발자국 소리와 함께 오르막을 오르면 도솔암에 도착한다. 선운사와 함께 백제시대 때 세워진 것으로 알려진 도솔암은 진흥왕이 선운사를 찾아와 가장 사랑했던 도솔왕비와 중애공주의 이름을 따 창건한 암자로, 암자 뒤에는 우뚝 솟은 칠송대 암벽이 있고 그 암벽 위에는 두툼한 입술과 살짝 치켜 올라간 눈이 인상적인 마애불상이 새겨져있다. 이 마애불상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마애불상으로 추정되고 있다. 수많은 여행자들은 이 불상 앞에서 종교에 상관없이 두 손을 모은다. 그 웅장한 규모와 천년의 시간을 거슬러 작은 정을 하나 들고 절벽 가득 새겨 넣었을 그 정성이 가득 느껴져 뻐근해진 마음을 두 손을 모아 표현한다.

칠송대를 돌아 계곡을 오르면 용문굴이 나타난다. 검단선사가 선우사를 창건할 당시 용의 방해가 심하여 용을 쫒아냈는데 그 때 도망가던 용이 만든 동굴이라 그렇게 이름 붙여졌다고 한다. 천길 낭떠러지라 불리는 천질암을 돌아 내려오면 다시 도솔암이다. 도솔암을 지나 다시 고운 흙길을 내려오면 이 긴 걸음의 이유인 선운사가 보인다. 우거진 나무, 돌담, 흙길이 여행자를 인도하는 아름다운 길을 3km정도 걸어야 한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 뒤에는 조금은 숨찬 오르막 산행이 기다린다. 그러나 거친 숨소리도 잠시, 수백 년은 넘었을 듯 보이는 소나무가 그늘을 드리우면, 그곳이 바로 선운사의 입구다. 백제시대 창건된 선운사는 동백숲, 장사송, 송악등 중요 문화재와 보물 외에도 아름다운 천연기념물이 가득하다. 황토담을 따라 안개가 신비스럽게 드리운 선운사 녹차밭은 부처님의 품속에 들어온 듯 하고, 그 뒤의 선운산은 아름다운 능선을 드리우고 있다. 그리고 이곳 선운산 관광안내소가 보은길의 끝이다. 여기서부터는 여행자의 선택! 아름다운 선운사를 등산하는 것도, 올라왔던 그 흙길을 반대방향으로 새롭게 느끼며 내려오는 것도 모두 추천한다. 둘 다 우열을 가리기 어려운 아름다움을 품고 있으니까.

전 세계에서 가장 고인돌이 빽빽하게 자리한 고창. 그곳에서는 세월이 익어가는 소리가 들린다. 3천년. 지금의 우리가 있기까지 존재했던 역사의 주인들. 그리고 그들을 지켜보며 이곳을 지켰을 푸릇한 나무와 흙길이 여행자를 반겨주는 곳, 고인돌 질마재따라 100리길 4구간, 보은길로 떠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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