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금

부석사와 무량수전 본문

그룹명/**여행**

부석사와 무량수전

하늘금2002 2010. 12. 13. 16:22

 

 

부석사와 무량수전

<2010. 10. 24(일), 맑음>

 

부석사..........경북 영주시 부석면 북지1리 148번지

 

역사

부석사는 신라 문무왕 16년(676) 해동 화엄종의 종조인 의상대사가 왕명으로 창건한 화엄종의 수사찰이다.

대사가 당나라에 유학하고 있을 때 당 고종의 신라 침략 소식을 듣고 이를 왕에게 알리고,

그가 닦은 화엄의 도리로 국론을 통일하여 내외의 시련을 극복하게 하고자 귀국하여 이절을 창건하였으며

우리나라 화엄사상의 발원지가 되었다.

 

고려시대에는 선달사 혹은 흥교사라 불리웠다.

1916년 해체보수시 발견된 묵서명에 의하면 고려초기에 무량수전 등을 중창하였으나

공민왕 7년 (1358)적의 병화를 당하여 우왕(禑王) 2년(1376) 무량수전이 재건되고, 우왕 3년 (1377) 조사당이 재건되었다.

 

유래

부석사라 이름하게 됨은 불전 서쪽에 큰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는 아래의 바위와 서로 붙지 않고 떠 있어 뜬돌이라 한데서 연유하였다 한다.

 

경내 설명

경내에는 신라시대 유물인 무량수전 앞 석등(국보 제17호), 석조여래좌상(보물 제220호),

삼층석탑(보물 제249호), 당간지주(보물 제255호), 석조기단 등이 있고,

고려시대유물인 무량수전(국보 제18호),조사당(국보제19호),소조여래좌상(국보제45호),

조사당벽화(국보제46호), 고려각판(보물 제735호), 원융국사비 등이 있다.

 

특히,무량수전은 우리나라 최고의 목조 건물 중 하나이며,

조사당 벽화는 모조건물에 그려진 벽화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현재 유물관 안에 보관되어 있다.

무량수전 안에 봉안된 여래좌상은 국내에 전래하는 최고의소상이다.

무량수전서쪽에 있는 우물은 의상대사의 호법룡이 살았다는 우물이라 전한다.

 

문화재

무량수전(국보 제18호), 무량수전앞 석등(국보 제17호), 조사당(국보 제19호), 소조여래좌상(국보 제45호),

조사당벽화(국보46호), 석조여래좌상(보물 제220호), 삼층석탑(보물 제249호), 당간지주(보물제255호), 고려각판(보물 제735호)

 

<후기> 

소백산과 태백산의 중간..... 산줄기 하나가 갈래쳐....봉황산이라 하고

그 자락에 자리하였는데.....경계가 모호하였는지......소백도 태백의 한 부분으로 보았는지....태백산 부석사라고 하며

현존 최고의 목조건물....가장 아름다운 한국의 건축미를 지녔다는 무량수전이 있다.

 

몇 해전 방문때 하고 분위기가 다른 것 같아 주민의 말을 들으니

천년 고찰 부석사 한쪽 구석에 대리석으로 무슨 박물관인가를 지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취소되었다 한다.

나야 알지 못할 이유도 있었겠지만.....옛 것과 새 것이 구별되지 못함이 안타깝다.

 

문화재가 있으므로 입장료를 내며 탐방객이 찾고 ..........사찰이 번영하며

우리 문화재를 더욱 잘 보존할텐데.......그 수입으로 박물관을 지었다면 ................

마치 황금의 탐욕에 물든 이가 황금 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갈랐다는 이솝 우화를 생각나게 한다.

지금이라도 사찰이 앞장서서 얼마 남지 않는 우리 문화재를 잘 보존해주기를 바란다.

 

 

 

부석사 진입로

 

 

태백산 부석사라 한다.

 

 

 

낡아 헐고.....그 터에

새로이 불사를 준비한다.

언제 보아도

아름다운 부석사

목조건물과 전각들

 

 

백두대간 마루금에서

한 줄기 맥이 뻗어 그 산................

봉황산 자락에....봉황산 부석사라 하네...........

 

 

 

 

 

 

 

 

 

 

 

부석사 무량수전

 

종 목  국보  제18호  
지 정 일 1962.12.20
소 재 지 경북 영주시  부석면 북지리 148 부석사 
시 대 고려시대


봉황산 중턱에 있는 부석사는 신라 문무왕 16년(676)에 의상대사가 왕명을 받들어 화엄의 큰 가르침을 펴던 곳이다.

『삼국유사』에 있는 설화를 보면, 의상대사가 당나라에서 유학을 마치고 귀국할 때 그를 흠모한 여인 선묘가 용으로 변해

이곳까지 따라와서 줄곧 의상대사를 보호하면서 절을 지을 수 있게 도왔다고 한다.

이곳에 숨어 있던 도적떼를 선묘가 바위로 변해 날려 물리친 후 무량수전 뒤에 내려 앉았다고 전한다.

그래서인지 무량수전 뒤에는 ‘부석(浮石)’이라고 새겨져 있는 바위가 있다.

 

무량수전은 부석사의 중심건물로 극락정토를 상징하는 아미타여래불상을 모시고 있다.

신라 문무왕(재위 661∼681) 때 짓고 고려 현종(재위 1009∼1031) 때 고쳐 지었으나,

공민왕 7년(1358)에 불에 타 버렸다. 지금 있는 건물은 고려 우왕 2년(1376)에 다시 짓고 광해군 때 새로 단청한 것으로, 1916년에 해체·수리 공사를 하였다.

 

규모는 앞면 5칸·옆면 3칸으로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한 구조를 간결한 형태로 기둥 위에만 짜올린 주심포 양식이다. 특히 세부 수법이 후세의 건물에서 볼 수 있는 장식적인 요소가 적어 주심포 양식의 기본 수법을 가장 잘 남기고 있는 대표적인 건물로 평가 받고 있다.

건물 안에는 다른 불전과 달리 불전의 옆면에 불상을 모시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무량수전은 우리 나라에 남아 있는 목조 건물 중 봉정사 극락전(국보 제15호)과 더불어 오래된 건물로서

고대 사찰건축의 구조를 연구하는데 매우 중요한 건물이 되고 있다. 

 

그 모습도 수려하고 웅장한

부석사 무량수전.............

요리보고...... 저리보고......뜯어도 본다.

밑단이 두텁고 윗단은 가늘며 배처럼 튀어 나온 ....

통나무를 사용했다는 대들보

부드러운 곡선을 이루며 휘어지는 지붕.....

아는 것이 없어....풍월은....끝.

고려 공민왕의 글씨라는데.........

 

무량수전 앞에서

본 소백산 자락.................

날라 다녔다는

전설의 부석..................

 

 

 

 

 

 

 

 

 

 

 

 

 

'그룹명 > **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땅끝여정1 : 대흥사~녹우당  (0) 2010.12.23
하회마을/병산서원  (0) 2010.12.21
회룡포와 삼강주막이 멋드러진 예천  (0) 2010.12.13
부산 갈매기  (0) 2010.12.08
땅끝 언저리  (0) 2010.1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