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금
낙남정간(11) : 돌장고개~무선산~실봉산임도 본문
낙남(11,12) : 과꽃터널은 간데없고 신선과 함께 지루박을... 낙남정간 11일차 돌장고개~무선산~실봉산임도 <2003. 3. 29(토), 맑음>
<지형도>
◈ 구간개요 <3. 29(11일차) : 돌장고개 - 무선산 - 거리재 - 화동마을 - 실봉산임도, 3. 30(12일차) : 실봉산임도 - 유수교 - 190.2봉 - 솔티재(2번국도)> 천황산 이후 300미터 내외의 산줄기는 돌장고개를 지나며 200미터 내외를 유지하다가 끝이 보이지 않는 과수원 지대에 이르러 100미터 이내로 뚝 떨어지며 산줄기라기보다는 동네 언덕배기 같다. 워낙 낮고 굴곡이 심한 산줄기라 정확하게 마루금을 긋기도 어렵고 정확하게 마루금을 긋는다 해도 지형훼손이 심해 실제 지형을 확인하기도 어렵겠다. 한마디로 독도주의와 함께 독도 난 구간이다. 주력 있는 종주자라면 돌장고개에서 유수교까지 당일 주파가 가능할 것 같다. 무리를 피하고 나.들목 교통편을 감안해 돌장고개 ↔ 화동마을, 화동마을 ↔ 솔티고개로 구간을 나누는 것도 괜찮을 듯 하다. 무수히 많은 과수원을 지나며 선답자의 표지기에 의존해 길을 찾는다. 길이 끊길라치면 표지기가 하나씩 나타나 길을 안내한다. 이른 봄의 과수원은 가지치기와 거름주기에 분주하고 과꽃을 구경하기에는 철 이른 듯 하다. 아름다운 과꽃 터널을 기대하였지만 야산의 진달래와 이름모를 야생화, 과수원 인근의 벚꽃과 성급한 몇몇 그루터기에서 갓 피어난 과꽃을 보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기대가 컷나? 비록 과꽃 터널은 환상에 그치지만 농약을 마시지 않고 이 과수원 지대를 통과하는 것으로 위로를 삼는다. 이 땅의 산줄기로서 비록 명맥조차 유지하기가 힘겨워 인위적으로 잘리고 끊기지만 밟히면 밟힐수록 끊질 긴 생명력을 더해가는 들녘의 잡초처럼, 헐벗고 굶주리며 천대 받고도 묵묵히 이 땅을 지켜와 오늘의 주인이 된 민초처럼, 우리 산줄기는 이렇게 끈질기게 이어간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기에 그 산세의 수려함과 웅장함을 떠나 더욱 마음이 시리고 애착이 가는 산줄기다. 특징상 구간의 구분이 무의미한 것 같아 날짜만을 달리하여 기록한다.
◈ 운행기록 《2003. 3. 29(토, 맑음) 》 ▶ 돌장고개 6:45 지난주에 이어 돌장고개를 기점으로 낙남 11일차 산행을 시작한다. 대전↔통영간 고속도로가 한창인 돌장고개 왼편 무덤 5-6기 있는 곳에 매인 표지기가 어서오라는 듯 반긴다. 기차와 비교하여 서울에서 진주까지 심야고속 운행시간이 훨씬 빠르다. 한번 정차에 그치고 주행 중 차내에 승객이동이 없기에 번잡하지 않고 실내조명이 없으므로 수면이 용이하다. 단점이라면 운행시간이 짧고 도착시간이 일러 진주 도착 후 시간계획이 필요하다. ▶ 무선산 8:00 완만한 잔솔밭을 올라 제법 덩치 큰 소나무가 울창한 숲을 지난다. 평탄한 능선길이 이어지다 50여 미터 뚝 떨어지며 솔잎이 쌓여 등로가 희미해진다. 표지기가 분산된 것으로 보아 선답자들도 혼란을 겪은 독도주의 구간으로 짐작된다. 우측으로 완만하게 이어지는 마루금으로 올라 방향을 잡는다. 정상은 잡목과 가시넝쿨이 무성하고 서쪽으로 약간 시야가 트인다. 삼각점을 확인하고 전방 무릎 깨 동강난 잡목 사이 빤질빤질한 길로 기분 좋게(?) 들어선다. ▶ 舞仙山 9:30 무선산을 지나는 이여! 정상에 서면 반드시 독도를 하고 표지기와 진행 방향을 꼭 확인하기 바란다.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1:30동안 재수에 옴 붙는 알바를 하여 지능선 끝부분까지 갔다 온다. 지능선상에 몇 개의 묘지로 이어지는 길이 희미해지다 나중에는 등로의 흔적도 없는 곳을 무슨 똥고집으로 고속도로 공사장이 보이는 곳 끝까지 갔다 왔는지. 나 원 참! 세상만사 똥고집 세워 좋은 일은 없는 것 같다. 지도와 실 지형을 확인하니 정상에서 뒤로 10여 걸음 돌아 나와 동쪽을 향하여 직각으로 꺾어야 했다. 궂은 날에는 링반더링으로 이어질만한 지형이다. 신선이 춤을 추는 산이어서 무선산이라 했던가? 그렇다면 신선의 춤은 지루박이었더란 말인가?
▶ 포장도로 9:50 도로 건너 전면에 잘 정돈된 가족묘지에서 늦은 아침을 먹는다. ▶ 170. 1봉 11:00 우로 금곡평야를 내려다보며 영천강을 끼고 부드러운 솔밭으로 이어진다. 아침에는 쌀쌀 하더니만 이내 덥고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댄다. 삼각점을 확인한다. ▶ 거리재 11;14 전후좌우 모두가 과수원. 지금까지도 수시로 과수원을 지났지만 이제부터 끝도 시작도 없는 과수원지대로 접어든다. 과수원이 마루금을 철망으로 막아 약간 비켜서 도로에 선다. 과수원 지대가 연속되므로 2개봉정도는 포장도로를 따라 지나는 것도 좋을듯하다. ▶ 과수원 산불감시초소 12:50 과실수가 뜨문뜨문한데 웬 산불감시초소 혹 불청객 감시초소가 아닐는지. 감시원께서 초소 외벽에 “환영 낙남종주”를 붙여 놓았다. 감사한 일이다. 본인의 성명과 주소, 주민등록번호, 휴대전화번호까지 적어놓은 것도 부족했는지 부인, 아들내외, 손주까지도 적어 배낭에 매달아 놓았다. 고만고만한 구릉에 온통 과수원이라 정확하게 마루금을 그어 독도를 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을 것 같아 독도는 생각지도 않기로 하고 선답자의 표지기를 따라 지도와 실제 지형을 비교해 가기로 한다. 잃어버릴만하면 표지기가 하나씩 나온다. 신경을 곤두세워 표지기를 찾지 않으면 길을 잃어버릴 수 있다. 우측으로 진주시가지를 끼고 과수원 길은 끝없이 이어간다.
밤, 감, 사과, 배, 두릅 등등 100미터 내외의 광활한 구릉지대가 모두다 과수원이다. 과꽃이 피기 직전인 나무에 가지 손질이 바쁘다. 내 생전 머리털 나고 이렇게 넓은 과수원지대는 처음이다. 임자가 있다 해도 잘만하면 과수원 하나는 주워 가질 수 있겠다. 과수원을 갖고 싶으면 낙남으로 가라! 그러나 따먹지는 마라! 풀잎이 시들시들 하고 푸른 잎에 하연 점이 박힌 듯 탈색되어있다. 제초제와 농약으로 범벅이 된 과일을 먹고 있는 것 같아 꺼림칙하다. 지금은 때가 일러 농약 먹을 일이야 없겠지만 열매를 맺을 때면 수시로 농약을 뿌릴 터이니 지나갈 일도 걱정된다. 이유야 있겠지만 환경농법으로 대체할 수는 없을까? 군데군데 소나무를 적당히 잘라내 두꺼운 비닐을 씌워 밑 부분을 흙으로 덮어놓고 “소나무 재 선충 훈증 중”이라 적어 놓았다. 버섯 키운다는 글인가?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지도상 죽봉굴이 인접한 것으로 보아 죽봉인 듯한 대나무가 무성한 곳을 지난다. ▶ 고속도로공사장 14:25 화동마을 뒤편으로 대전↔통영간 고속도로 공사 중이다. 공사 완공 후에는 좌측 과수원에서 화동마을을 잇는 굴다리를 통로로 이용해야 할 것 같다. ▶ 화원마을 14:40 화동마을 뒤편으로 고속도로 변을 따라 굴다리를 지난다. 도로변 경사에 수십마리 흑염소 떼를 방목중이다. 갑자기 위풍당당한 숫염소 두 마리가 풀숲에서 튀어나와 나를 외부의 침입자로 보고 가솔들을 보호하기위해 돌진하는 것 같아 스틱으로 방어자세를 취했더니만 “으-매헤헤- - - ”하며 옆길로 센다. 싱거운 놈. 수 십 마리 처첩을 거느리고 권세와 향락을 누렸으면 사력을 다해 책임을 완수해야지 하는 시늉만 내고 줄행랑 놓는 것을 보고 인간사를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굴다리를 나와 국도를 건너고 다시 또 다른 굴다리 밑을 지나 화원 마을에 이른다. 마을 입구에서 좌측으로 꺾어 임도 오르는 길에 표지기가 반긴다. 뒤쪽에 물탱크 같은 구조물이 보인다. 오늘산행을 여기서 마감할까하다 시간이 일러 가는데 까지 가보기로 한다. 화원마을 뒤편 억새 무성한 곳에서 표지기가 끊긴다. 억새밭에서 우왕좌왕 끝에 우측 과수원 밭길을 빙글 돌아간다. 예리한 억새 잎에 손등을 베었던지 선혈이 낭자하다. ▶ 실봉산 산불감시초소 16:10, 실봉산 정상 16:47 임도가 두릅농원 정상으로 이어지며 휴게시설과 안테나가 설치되어 있다. 초소에서 봉투를 붙이다 인기척에 고개를 들며 촌노가 나를 반긴다. 친절하신분이다. 정상으로 이어지는 등로에 진달래가 화사하고 삼각점에는 깃발을 단 측량 봉을 세워 놓았다. ▶ 실봉산 안부 임도 17:10 내리막 끝 임도에 승용차가 서 있다. 뒷자리를 개조해 이부자리를 깔고 앞좌석만 달랑 두개에 사람 흔적이 있어 이 깊은 산속에 웬 승용차인가 싶어 의아하다. 임도건너 오르막을 가며 씩씩거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으악! 웬 늑대 두 마리와 종자도 알 수 없는 것들이 합세하여 허연 이빨을 드러내며 나를 향해 달려오는 것이 아닌가? 혼비백산. 기절초풍할 지경이다. 순간 아래 위로 새까만 등산복을 입은 나를 동네 야산 멧돼지 정도로 착각하여 엽총을 겨누고 있을 사냥꾼이 있지 않을까 싶어 아찌! 아찌 아찌! 기어들어 갈랑 말랑하게 다급한 목소리로 외친다. 멧돼지로 오인되어 잃어버린 봉우리(失峰)에서 잃어버린 영혼이 되는가 싶었는데 장글모자, 장글복, 장글화를 신은 날렵한 싸나이가 한 손에 창을 들고 용맹스럽게 나타난다. 아이고! 살았구나 싶다. 사천에 살며 동물을 좋아하여 투계, 투견 등 희귀동물을 수집하여 가리지 않고 키운다는데 투견 운동 겸 이틀 전 야산에서 잃어버린 진돗개 교배종 두 마리를 찾으러 왔다한다. 갈수록 태산이라더니 앞으로 갈 길에 미친개가 두 마리씩이나 기다리고 있단 말인가? 이런저런 이야기 중에도 눈치 없는 것들은 내 주변을 배회하고 나는 오금이 저려 다리가 후들거리지만 겉으로 애써 태연한 척 한다. 해가 서산으로 기울고 오늘 산행을 여기서 마감하기로 한다. ▶ 진주 철창이 있지만 뒤에 투견 세 마리를 태우고 앞에 앉으니 뒷덜미가 서늘하다. 꽤 길게 느껴지는 임도와 포장도로를 지나 경전선 철길을 건넌다. 나동 양조장 입구 버스정거장에서 20여분 기다려 진주행 버스를 타고 남강 강변도로를 따라 순환하다 중앙시장에서 내려 제일식당을 찾아 들어간다. 육회에 소주 한잔 곁들이며 망중한을 보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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