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금
낙남정간(15) : 고운재~삼신봉~영신봉 본문
낙남정간 15일차
고운재 - 영신봉
<2003. 5. 17(토), 맑음>
<지형도>
◈ 구간개요
<묵계삼거리-고운재-삼신봉-영신봉>
낙남정간의 마지막구간 이다.
하루 밤을 산에서 묵을 여정이라 약간의 시간 여유가 있어선지 산행할 생각은 접어두고 여기저기 기웃거릴 생각이 앞선다.
하동은 산천경계 수려하며 유서 깊고, 풍물 다양해 먹거리 풍부해 시간이 있는 대로 기웃거려도 끝이 없을 곳이다.
산은 제 철을 맞아 성숙함을 더하여 나그네를 유혹한다. 마루금은 의심의 여지없이 확실하다.
고운재부터 첫 암릉지대까지 키를 넘는 산죽의 저항과 넘어진 잡목들이 진로를 방해한다.
묵계삼거리부터 오르니 하루에 올라야 할 고도가 힘에 부쳐 부담스럽다.
외 삼신봉에 이르면 지리 주능선과 전후좌우의 조망이 한 눈에 들어오고
지리를 찾는 사람들과 반갑게 조우하며 낙남의 하이라이트를 만끽할 수 있다.
영신봉에서 삼신봉으로 곱게 내린 능선은 팔등신 미인의 나신보다 더 눈부시게 아름답고
수시로 조망되는 사위의 절경은 지나는 이의 발걸음을 잡기에 충분하다.
◈ 후기
▶ 하동역 6:04
기차는 밤을 달려 나를 하동에 내려놓고 진주로 떠난다. 청학동행 첫차가 8:20이라 시간이 많다.
하동장은 끝자리 2, 7일에 서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다.
아직 시간이 일러 번잡하지는 않지만 각종 야채와 과일, 잡화가 길거리에 깔리고 장꾼들은 장 맞을 채비에 바쁘다.
길 따라 길게 늘어지고 꺾였다가 그러그러게 이어가며
찹쌀 두 됫박, 파란 콩 한 됫박, 마늘, 오이, 고추, 상추 한 광주리씩. 배추, 열무 한 무더기씩. 취나물은 포대로 쌓아놓고.
가죽나물은 묶음으로 나돌고. 앵두는 광주리에서 빨갛게 익고. 조개 까고, 생선 배따고. 사탕 한 봉지 까서 서너개씩 돌려 군입 다시고. 내 놓은 물건의 양은 적지만 가지 수는 장보는 사람보다 많고 장보는 사람만큼 인심도 가지가지다.
아직 8시도 안된 이른 시간인데 이미 버스에 타 다음 행선지를 기다리는 할머니들이 있다.
비닐봉지에 담긴 그 무엇들을 들어올리며 시끌벅적 버스 안은 또 장터가 된다.
이방인도 자연스럽게 참여할 기회를 갖는다. 장은 할머니들의 소일이자 위안인 모양이다.
장을 채 맛보지도 못하고 시간에 쫓겨 발걸음을 옮겨야 함이 아쉽다.
▶ 묵계삼거리 9:05
청학동과 고운동 가는 길이 나뉜다.
하동에서 황천까지 버스로 15분 걸리고 황천에서 청학동이 28km 다.
버스가 안 다닐 적 청학동은 걸어 나오는데 하루, 들어가는데 하루 걸리는 그야말로 오지였음이 분명하겠다.
▶ 고운재 10:00
이름도 곱고 낯익은 고운재 다. 철망 좌측으로 들어가는 표지기가 보인다.
해발 400여 미터의 묵계삼거리에서 800여 미터의 고운재까지 아스팔트를 따라 걷다보니 등줄기에 땀이 흥건하다.
군데군데 민박집이 보이고 오를수록 내려다보이는 것이 많다.
▶ 묵계치 11:00, 11:30발
고운재 지나 잡목이 배낭을 잡더니 곧 키를 넘는 엄청난 산죽 밭이 이어진다.
잡목이 어중간하게 쓰러져 길을 막으면 나는 엉거주춤 낮은 포복을 하다
매낭 뒤에 매단 매트리스가 걸려 납작 엎드리다 배-암이라도 있나 싶어 주변을 살핀다.
산죽 잎사귀에 붙은 봄바람에 휘날린 송화와 꽃가루, 흙먼지, 낙엽은 내차지가 되어 온 몸에 뒤집어쓴다.
등산로의 거미줄과 애벌레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내 몸에 찰싹 달라붙어 기어 다닌다.
취사.비박장구를 챙겼더니 뒤에서 잡아 댕기는 듯한 중압감을 느낀다.
종주산행은 가볍게 지고 멀리 뛰어야 하는데 산장을 이용할 것을 보따리를 크게 했나 싶기도 하다.
헬기장 좌측 전나무 아래서 무게도 줄일 겸 점심을 먹는다. 더덕향이 코끝을 맴돈다.
▶ 첫 암릉지대 12:25
묵계치를 지나 오름길이 가파른데다 아예 산죽 숲이라 또 한번 낑낑댄다.
수시로 산죽 밭을 지나 첫 암릉 지대에 이르니 좌우로 전망이 트이고 산죽의 기승도 한풀 꺾인다.
우측으로 천왕봉이 들어오고 좌측으로 묵계마을이 보인다.
▶ 외 삼신봉 13:35
이제껏 땅만 쳐다보고 오다가 전후좌우 막힘없는 전망과 절경에 취하며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노고단에서 천왕봉까지 흘러간 지리 주능선의 봉 봉 봉들! 영신봉에서 분기하여 살아 꿈틀대는 것 같은 낙남 길!
오랜만에 정상 표지석을 배경으로 자동 샷터를 누르고 지도를 펴 봉우리 하나씩 짚으며 대조해 나간다.
외 삼신봉 정상 못미쳐 4미터 암릉 구간에서 배낭과 스틱을 끌어올리기 위해 밧줄에 묶어놓고
맨몸으로 먼저 올라 조심스럽게 통과한다.
▶ 삼신봉 14:25
굴곡 없는 능선을 따라 청학동, 쌍계사, 세석을 가리키는 표지를 지나 삼신봉에 오른다.
이곳 조망 또한 말로 다할 수 없다. 청학동과 쌍계사에서 오르는 여러 사람들과 만나게 된다.
이제 마루금은 더 이상 나 홀로 가는 길이 아니다.
윗도리를 벗어제낀 건각이 삼신봉 삼신 선녀의 기둥서방이라도 되는 양 이방인을 맞는다.
지리산이 좋아 10여년 이상을 지리산만 고집하며 중산리에서 천왕봉을 300회 이상 왕래한 진주의 악우라 한다.
이후 그이는 나와 동행하며 나 홀로 낙남길의 위로가 된다.
주능의 삼신봉, 내삼신봉, 삼신봉, 외 삼신봉. 웬 삼신 선녀가 이리 많은지.
▶ 세석평전 19:30
외 삼신에서 바라보는 영신봉에서 쭉 뻗어 내린 능선은 채 열 뼘도 안 될 것 같은데 가도 가도 끝이 없다.
아니 빨리 가고 싶지 않아 감세 감세 쉬어감세를 반복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갈 길이 빤해 시간에 쫒기지 않는 참으로 여유로운 산행이다.
좌측 음수 우측 양수를 합하여 음양수(?)라 한다는데 물맛이 좋다.
위쪽 평평하고 너른 암반은 죽마고우를 만나 긴 밤 지새우며 옛 애기 나누고 쉬어가기 좋겠다.
길가에 돌절구는 무엇에 쓸려고? 철쭉은 꽃망울을 머금고 다음 주 만개 할 것 같다. 어둠이 찾아온다.
비박하기로 작정한터라 세석산장 앞 헬기장에 자리를 잡는다.
한달음에 달려갈 영신봉은 시간이 늦어 내일 아침에 찍고 천왕봉을 거쳐 중산리로 하산하기로 한다.
동행과 저녁을 함께하며 소주잔을 기운다. 별이 드문드문 하고 늦게 떠오른 달은 달무리가 끼었다.
2002년 12월 말부터 5개월여 걸친 15일간의 낙남행 마지막 밤.
나는 어미의 품에 젖먹이인양 포근하게 안긴다. 끝.
◈ 교통 및 숙식
▶ 교통
♠ 하행 : 5/16(금) 23:50 서울발, 5/17(토) 6:04 하동착
♠ 들머리 : 하동(8:20 첫차, 2,700원)→묵계삼거리(도보)→고운재
♠ 날머리 : 중산리→진주
♠ 상행 : 5/18(일) 16:30 진주 시외버스(우등16,500원), 20:30 남서울터미날
▶ 숙식 : 세석평전(비박)
◈ 낙남정간이란?
백두대간이 백두산에서 줄기차게 남으로 뻗어 내리다 지리산 천왕봉에서 끝을 맺고,
천왕봉 못 미쳐 세석평전을 품고 있는 영신봉에서 남쪽으로 한 갈래를 친 산줄기를 일러 낙남정간 이라 한다.
『여지편람』 산경표의 순서에 의하면 백두대간 장백정간 낙남정간 그리고 백두대간의 북쪽부터 가지로 뻗어나간 순서로 기술하여
호남정맥에서 끝을 마친다. 항간에는 낙남정맥으로 부르고 있으나 낙남정간으로 고쳐 불러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영신봉에서 시작한 낙남정간은 삼신봉, 외삼신봉, 묵계치, 고운재, 옥산까지의 산줄기는 서쪽으로 물길을 터 섬진강으로 흐르고,
동쪽으로 흘러든 물은 거대한 인공호수 진양호에 갇혀 있다가 남강을 따라 낙동강으로 합류하거나
산줄기를 잘라내 인위적으로 만든 가화강을 거쳐 사천만으로 방류되기도 한다.
옥산 이후 남북을 가르며 동서로 뻗는 낙남정간은 경상남도 해안지방과 내륙지방을 가르고,
북쪽으로 흐르는 물줄기는 남강으로 흘러들어 낙동강과 만나며 남쪽은 바닷가로 흘러든다.
가화강을 건넌 마루금은 백운산 대곡산 무량산 여항산 서북산 광려산 대산 마산의 무학산, 천주산 창원의 봉림산 대암산 용제봉
김해의 신어산을 끝으로 낙동강 하구인 김해시 상동면 매리라는 마을에서 그 명을 다하여 낙동강에 안기는 221키로의 산줄기다.
지리산 구간을 제외하면 800미터 이하의 낮은 산등성이로 이루어져 있고
특히 가화강 부근은 낮은 곳은 수십미터 내외로 과수원 등이 형성되어 있으며
내륙과 해안의 특이한 기후 분포를 보여주는 중요한 산줄기라 한다
◈ 종주에 필요한 지형도 도엽명(1:50000) :
부산 김해 창원 마산 함안 통영 진주 사천 곤양 남해 하동
◈ 종주일람표
제 1일차 2002. 12. 20(금) 흐림, 매리 2교 - 신어산 - 나밭고개
제 2일차 2003. 1. 11 (토) 맑음, 나밭고개 - 황세봉 - 냉정고개
제 3일차 1. 12 (일) 맑음, 냉정고개 - 용제봉 - 남산치
제 4일차 1. 25 (토) 흐림, 남산치 - 봉림산 - 신풍고개
제 5일차 2. 15 (토) 흐림, 신풍고개 - 무학산 - 쌀재고개
제 6일차 2. 16 (일) 맑음, 쌀재고개 - 대산 - 한치재
제 7일차 3. 8(토) 흐림, 한치재 - 여항산 - 발산재
제 8일차 3. 9(일) 맑음, 발산재 - 깃대봉 - 제일목장
제 9일차 3. 22(토) 맑음, 돌장고개 - 양전산 - 추계리
제 10일차 3. 23(일) 맑음, 추계리 - 무량산 - 제일목장
제 11일차 3. 29(토) 맑음. 돌장고개 - 과수원 - 실봉산임도
제 12일차 3. 30(일) 맑음, 실봉산임도 - 유수리 - 솔티고개
제 13일차 4. 12(토) 비온후갬, 솔티고개 - 223.2봉 - 배토재
제 14일차 4. 13(일) 맑음, 배토재 - 옥산 - 고은재
제 15일차 5. 17(토) 맑음 고은재 - 삼신봉 - 영신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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